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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大藏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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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교대학 작성일11-05-21 15:05 조회3,64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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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大藏經)

  불교의 경전이나 논서를 집합한 총서를 󰡐대장경(大藏經)󰡑이라고 하며, 또는 일체경(一切經)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총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총서는 <팔리어 삼장(三藏)>이다.
  이것은 초기불교의 성전인데, 붓다가 설한 가르침인 경장(經藏)과 계율과 교단의 규칙인 율장(律藏)과 제자들이 교법을 연구한 논장(論藏)을 포함하고 있다.
  <팔리어 삼장>은 대승경전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두번째로 들 수 있는 총서가 <티베트대장경>인데, 이는 티베트어로 번역된 일체경(一切經)이라는 말이다.
  7세기 경부터 번역이 시작되어 9세기에는 대부분의 완성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 번역되어 <티베트대장경>이 성립되었다.
  불교가 인도에서는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에 후기 인도불교의 경론은 티베트역으로 남아있는 것이 많다.
  티베트대장경은 13세기 이후 수 차례에 걸쳐 복판에 의해 출판되었다.
  대장경이라고 하면 우리는 <한역대장경>을 연상한다.
  이것은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이나 논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중국 불교학자들의 저작도 포함하여 편집한 것으로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경(經), 율(律), 논(論)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그 분량이 가장 많다.
  <한역대장경>은 번역이 시작된 2세기부터 1000년에 걸쳐 진행된 번역이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① 팔리삼장

  팔리어로 씌어진 불교 성전의 총칭이다.
  삼장(三藏)이란 경(經), 율(律), 논(論)의 셋을 잘 간직하여 담고 있는 광주리라는 의미이다.
  붓다가 입멸한 지 100년 내지 200년이 지나자 불교 교단은 여러 부파로 분열한다.
  각 부파는 옛 전승을 내세워 그들 부파만의 삼장을 갖게 된다.
  성전의 용어도 일치하지 않아 팔리어, 각종 속어, 산스크리트어 등으로 전해져 왔다.
  팔리어는 원래 서인도의 언어였던 것이 붓다의 입멸 후 초기교단이 서인도로 확대됨에 따라 성전의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 시대에 마힌다(Mahinda)에 의해 불교가 현재의 스리랑카로 전해졌다.
  이 때 스리랑카는 팔리어를 불교용어로 사용하였는데 이후 이 전통은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등의 동남 아시아에 확산되어 남방불교권이 형성되었다.
  팔리삼장의 조직은 다음과 같다.
  율장(律藏)은 경분별부(經分別部), 건도부, 부수(附隨:부록)로 되어있다.
  경분별부는 계율의 본문을 분별하여 해설한 것으로 대분별(大分別)과 비구니분별(比丘尼分別)로 나뉜다.
  건도부는 교단의 제도와 규정에 대한 것으로 대품(大品)과 소품(小品)으로 나뉜다.
  경장(經藏)은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지부(增支部), 소부(小部)로 나뉜다.
  장부는 붓다와 제자들의 언행을 모은 긴 경전이며, 중부는 중간 정도로 긴 경전이며, 상응부는 짧은 경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모은 것이며, 증지부는 짧은 경은 교법의 수에 따라 1법에서 11법으로 모은 것이며, 소부는 앞의 4부에서 빠진 것을 모은 것이다.
  논장(論藏)에는 <법집론(法集論)>, <분별론(分別論)>, <계설론(界說論)>, <인시설론(人施設論)>, <논사론(論事論)>, <쌍대론(雙對論)>, <발취론(發趣論)>이 있다.
  이외에 교리강요서, 성전주석서, 사서 등이 있는데 이들을 일괄하여 장외(藏外)라고 통칭한다.
  부파불교의 교단 내에서 삼장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은 팔리어 삼장뿐이다.
  팔리삼장은 19세기 유럽 학자들의 연구와 출판에 의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리스 데이비즈(Rhys Davids)가 영국 런던에서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한 이래 팔리 삼장의 원전 및 영역본은 유명 학자들의 협력을 얻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출판되었다.
  현재 삼장은 출판이 완료되었고, 장외(藏外)의 문헌도 다수 간행되었다.
  일본에서는 장외(藏外)의 문헌까지 약간 포함하여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으로 번역 출판하였다.

 ② 티베트대장경

  티베트어로 번역된 경전의 집성을 <서장(西藏)대장경> 또는 <티베트대장경>이라고 한다.
  내용은 크게 칸규르와 텐규르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의 것이 불설부(佛說部), 뒤의 것이 논소부(論疏部)이다.
  율장(律藏)에 해당되는 전적은 불설(佛說)로서 칸규르에 들어가 있으나 그에 대한 주석은 텐규르에 소속되어 있다.
  각 부의 세부적인 배열 순서는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칸규르를 율(律), 반야(般若), 화엄(華嚴), 보적(寶積), 제경(諸經), 비밀(秘密)의 6부로 분류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경(諸經)으로부터 열반부(涅槃部)를 독립시킨다.
  텐규르는 찬송(讚頌), 비밀(秘密), 반야(般若), 중관(中觀), 경소(經疏), 유식(唯識), 구사(俱舍), 율(律), 불전(佛傳), 서한(書翰), 인명(因明), 성명(聲明), 의명(醫明), 공교명(工巧明), 잡다한 제부(諸部)로 분류한다.
  7세기 초에 고유의 문자를 제정했던 티베트에서는 779년부터 역경사업을 착수하였는데, 824년에는 티베트 불전 목록으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덴카르마 목록>이 작성되었다.
  여기서는 당시까지 번역되었거나 번역 중인 대승과 소승 및 현교와 밀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의 제목을 23항 734부로 분류하여 기록하였다.
  티베트에서는 843년에 시작된 왕조의 분열에 의해 역경이 중단되었으나 11세기 이후 밀교 관계의 경전과 논서들이 번역되면서 적어도 네 차례의 대장경의 간행이 있었다.
  13세기 경에는 처음으로 대장경이 목판에 의해 인쇄되었다.
  이것을 나르탕 고판(古版)이라고 한다.
  이후 나르탕 판은 1410년과 1602년에도 다시 새겨졌으나 1730년에는 달라이 라마 7세의 명에 의해 대규모로 개정되었다.
  이것은 나르탕 신판(新版)이라고 하는데, 이후의 정본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리탕판 및 그 밖의 판본을 근거로 하여 델게 판이 개판(開版)되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 이래로 티베트와의 교섭이 있었는데 8-9세기에는 상당수의 한역 경전들이 티베트로 전해져 번역되었다.

  ③ 한역대장경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 경전의 총칭으로서 넓은 뜻으로는 중국, 한국, 일본의 불교인들의 저술도 포함한다.
  처음에 불교의 경전은 경(經), 율(律), 론(論)의 삼장(三藏)으로 분류되었으나 나중에 대승 경전이 출현하였기 때문에 삼장(三藏)이라는 분류가 적당하지 않게 되었다.
  중국에서 경전이 번역됨에 따라 중국인의 저서도 경전 속에 포함시키게 되면서 중국에서는 대장경(大藏經)이라는 새로운 말이 조성되었다.
  즉 전체의 불교 경전을 대장경(大藏經) 혹은 일체경(一切經)이라는 총칭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최초로 경전을 번역한 사람은 안식국의 안세고(安世高)인데 그는 주로 소승 경전을 번역했다.
  이어서 월지국의 지루가참(支婁迦讖)이 주로 대승 경전을 번역했다.
  그 후 점차 번역 사업이 성행하면서 번역 경전들을 바르게 전수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하였다.
  최초의 유명한 목록은 전진(前秦)의 도안(道安)이 작성한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 1권인데 소실되었다.
  여기서는 전체 경전을 8록(錄)으로 분류하여 639부 886권을 수록하였다고 한다.
  그 후 많은 경록(經錄)이 작성되었는데 유명한 것은 승우(僧祐)의 <출삼장기집>, <법경록(法慶錄)>, 비장방(費長房)의 <역대삼보기>, 도선(道宣)의 <대당내전록>, 지승(智昇)의 <개원석교록> 등이다.
  이처럼 많은 경록(經錄)들이 발간되면서 점차 불교 경전의 분류도 일정하게 되었는데 특히 <개원석교록(開元石敎錄)>의 입장록(入藏錄)이라는 분류가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개원석교록>에서는 일체경(一切經) 1076부 5048권을 대승경(大乘經), 대승율(大乘律), 소승경(小乘經), 소승율(小乘律), 소승논(小乘論), 현성집(賢聖集)의 7부로 나누고 현성집의 108부 541권 중에 인도 논사들의 전기류나 중국인의 저작을 포함시키고 있다.
  처음에 대장경은 대개 필사(筆寫)에 의해 전래되었으나 송나라 시대 이후 목판 인쇄에 의해 간행되었다.
  송판(宋版)의 제1회 간행본인 촉판(蜀版) 대장경은 5000여 권을 담았는데 그 후 수 차례 송대(宋代)에 간행되었다.
  아울러 계단판(契丹版), 고려대장경 같은 대장경이 중국 밖에서 간행되었다. 이어서 원나라 시대의 원판(元版)이 있고, 명대(明代)에서도 두 차례 간행되었다.
  고려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여러 차례의 교감(校勘)을 거친 것이다. 고려대장경은 고려에서 간행된 것으로 초조(初雕) 대장경, 속장경(續藏經), 재조(再雕) 대장경이 있다.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1010-1031)때에 간행되었고, 속장경은 대각국사 의천이 간행하였고, 재조대장경은 고종(1214-1259)때에 간행한 것으로 현재 해인사에 있는 대장경이다.
  고려대장경은 현재 학계에서 널리 이용하고 있는 일본의 활자본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저본이 되었다.
  대정신수대장경은 19세기말에 일본에서 활자화된 것으로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면서도 독자적인 분류로써 경전을 분류하였다.
  그리고 송(宋), 원(元), 명(明)의 대장경을 대교(對校)하고 정창원(正倉院)에서 소장된 7세기의 천평사경(天平寫經) 및 6-8세기의 수(隨), 당(唐) 사경(寫經)과 대교(對校)하였으며, 돈황사본으로부터 많은 경전을 선택하고 중국과 일본의 불전을 다수 증보하여 현재 활자판으로 간행된 대장경으로는 가장 우수하다.
  모두 100권인데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1-55), 일본 찬술부가 29권(56-84), 돈황사본 1권(85), 도상부(圖像部) 12권, 목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의 55권은 대개 지금까지 전해져 온 대장경의 내용에 상당한다. 여기에는 2265부 9041부가 실려있다. 제85권인 돈황본은 고일부(古逸部)와 의사부(疑似部)로 나뉜다.
  다음의 도상부(圖像部) 12권은 불교미술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수록한 것이다.
  목록 3권은 각종 대장경의 목록을 시작으로 하여 온갖 종류의 목록을 망라한 것인데, 이를 통해 대장경의 내용과 유명 사원들이 소장한 일체경(一切經)의 내용 등을 알 수 있다.

  ㉠ 대장경 조성역사
 
  중국의 대장경판 조성의 역사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를 전하는 구법승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일이었으며 이런 역경 사업엔 대소(大小) 왕조의 지배자들이 앞다투어 후원하고 추진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부처님의 경전을 잘 모시고 번역하면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왕조와 나라가 번영하고 백성이 평안하고 자연재해가 적어지고 오랑캐를 물리칠 수 있다는 부처님 가피력에 대한 믿음이 지극하였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이런 역경사업이 산발적으로, 대규모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많은 한역 경전이 나오게 되어 자연히 경전의 내용별 선후(先後)분류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730년(開元 18年)에 지승(智昇)스님이 경전을 내용별로 잘 분류하여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이라는 최초의 대장경 목록 책을 펴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불경은 모두 붓으로 직접 쓴 사본(寫本)이었는데 전란이나 불교를 배척하는 세력가들에 의해 경전이 소실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이러한 폐단을 없애려고 불경을 돌이나 나무에 새겨서 길이길이 보존하려는 믿음과 함께 대장경 조판을 통해 호법호국의 신앙이 확산되어 있었습니다.
  역사상 경전을 나무에 판각한 최초의 대장경판은 "북송 관판대장경(北宋官版大藏經)" (972년 시작~983년에 완성)입니다.
  대장경판은 대장경 목록 "개원석교록"을 바탕으로 북송 태조의 칙명으로 만(滿) 11년만에 완성되었으며 모두 13만매 정도로 차례는 천자문(千字文)순으로 480함(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북방 오랑캐 금(金) 나라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습니다.

  ㉡ 우리나라 대장경 조성역사

  우리나라 대장경판 조성의 역사 우리는 대장경을 흔히 "고려대장경" 또는 "팔만대장경"이라 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대장경이 조판된 시기가 고려시대이고, 조성된 경판수가 팔만장 이상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경판이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라 "해인사팔만대장경"이라 하기도 합니다.
  최초의 대장경판은 고려 현종 2년(1011년)때 시작하여 현종20년(1029년)에 완성된 "초조 고려대장경"(初雕 高麗大藏經)으로 대체로 󰡐북송 관판대장경󰡑의 내용을 토대로 조성하였으며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1232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북송 관판대장경󰡑을 토대로 조성한 󰡐초조 고려대장경󰡑에 만족하지 않고 완벽하고 주체적인 대장경을 만들려는 원대한 뜻을 품고 고려 문종 때 초조대장경의 보완과 더불어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흥왕사에서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불교 역사상 최초의 창조적 대장경 조성 사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책이 고려 속장경(續藏經)이라 불리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라는 책으로 송나라와 요(遼)나라 및 일본에까지 가서 경전을 조사하고 수집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방 외적의 병화로 소실되었으며 국내 및 일본등지에 남아 있는 영인본을 통해서 그 탁월한 창조적 내용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현재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고려 고종23년(1236년)에 시작하여 고종 38년(1251년) 16년에 걸쳐서 완성되었습니다.
  강화도 선원사에는 장경도감을, 진주 등지에는 분사를 두어서 판각하였으며 처음에는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봉안하였다가 외구의 노략질이 심해서 더욱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서울 지천사(支天寺)를 거쳐 1398년에 해인사로 옮겨져 지금까지 안전하게 봉안되고 있습니다.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중 최고(最古)의 것이며, 여러 차례 교감(校勘)을 거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경판입니다.
  최근 일본이 자랑하며 만든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책도 거의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기초로 하여 교감(校勘) 되었습니다.
  또한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은 다른 나라(송나라, 금나라, 거란 등)의 대장경판의 내용을 아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료로 대장경을 만들 때 대장경 원본(原本)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역사상 다른 대장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문헌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판 글자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고 모두 일률적이어서 현존하는 각판 문화재(刻板文化財)중 최상의 보물이며, 예술성이 뛰어납니다. 지금 국보(國寶) 제 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총매수는 81,258매로 경(經) 종류가 1,511종이며 6,802권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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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스님님의 댓글

혜안스님 작성일

한국의 최초의 대장경판은 고려 현종 2년(1011년)때 시작하여 현종20년(1029년)에 완성된 "초조 고려대장경"(初雕 高麗大藏經)을 최초의 대장경판 대작불사였습니다.
그래서 2011년 올해는 초조대장경 1,000년의 해입니다.
아마도 대구부인사와 합천해인사에서는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중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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