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경(僞經)
페이지 정보
작성자 불교대학 작성일11-05-21 15:11 조회3,182회 댓글0건본문
위경(僞經)
불교에서 경전이라 하면 원칙적으로 부처님이 직접 설파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문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외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그의 행적을 다루는 문헌으로서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나 다름없는 권위를 인정받는 문헌도 한문으로 번역된 경우일 경우에는 경이라 불러왔습니다.
위경(僞經)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 설한 것처럼 위조된 경전을 가리키는데, 실제로는 반드시 그러한 원칙에 의해 위경(僞經)과 진경(眞經)이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경전을 편찬하는 풍습이 성행함으로써 부처님이 설한 순수한 교리와 혼동되는 예가 적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대승경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대승경전을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따라서 위경이란 중국 등지에서 새로 제작된 경문만을 이르고, 인도나 티벳에서 전래된 것들은 모두 진경이라 간주되어 삼장 속에 편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티벳에서도 명백한 위경들이 상당히 제작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진경과 위경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면, 산스크리트 원본 등으로부터 번역된 경전을 진경 또는 정경이라 칭하고, 그로부터 번역된 경전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위경 또는 의경이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경(僞疑經)이라는 호칭도 사용되는데, 중국에서 편찬된 경전 목록, 즉 경록(經錄)에 의하여, 의경과 위경을 구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역된 경전이라 보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경전을 의경이라 하고, 위조된 것임이 확실한 경전을 위경이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경과 위경을 가리는 기준은 원전이 불교의 본산지인 인도에서 제작되었느냐의 여부와, 그 원전의 언어가 산스크리트인가 아닌가의 여부에 있습니다.
빨리어의 경우엔 그로부터 한역된 예가 매우 드물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국에는 상당한 양의 위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서는 여러 종의 경록들이 편찬되었습니다.
남북조 시대엔 46부 56권, 수나라 시대엔 209부 490권, 당나라 초기엔 406부 1074권의 위경들이 비약적으로 증가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특히 개원석교록이라는 유명한 경록이 대장경에 편입된 것으로 수록하고 있는 문헌의 수가 1076부 5048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위경들이 유행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불교의 완성기라고 하는 수(隨)와 당(唐)의 시대는 위경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위경들은 난해한 불교교리를 이해하는 데에 소질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불교를 근거로 삼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대장경에서는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끊임없이 이들 위경들이 진경과 마찬가지로 신봉되어 남몰래 서사(書寫)되고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행했던 위경들도 송나라시대 이후에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그 편린이나 이름만이 남아 있다가, 근래에 돈황에서 발견된 문헌들을 통해 적지 않은 위경들의 면모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국의 법을 밝힌 것으로 유명한 인왕반야경은 잘 알려진 위경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보살의 계위를 논하였던 범망경梵網經(초기경전 중의 범망경과는 다르다)은 남북조시대에 있어서 통치자의 비법과 승려의 비행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들과 연관있는 유명한 경전으로서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도 위경이라 간주됩니다.
위경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선입과도 크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위경인 줄 모르고 불교의 진면목인 양 신봉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위경이 큰 영향을 끼친 예로서는 중국의 삼계교三階敎가 있다.
말법시대의 중생구제를 위한 강력한 실천을 내세웠던 삼계교는상법결의경이라는 위경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경전은 6세기후반의 불교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을 반영한 것으로서 불교계의 타락과 헛된 신행을 지적하며 반성과 개혁을 강조하였습니다.
위경에 있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비불교적 요소의 삽입입니다.
이 경우 도교의 영향을 받은 위경이 많습니다.
점찰선악업보경이라는 위경에서 설명하는 점찰법이란 나무 바퀴를 가지고 과거 세상의 선악업과 현세의 고락길흉 등을 점치고, 흉사가 나타나면 지장보살을 예참하여 죄를 멸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본래 입장이 아닐 뿐더러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신행이 혹시 과거에 유행했던 위경에 의한 그릇된 것이 아닌지를 항상 점검해 보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서 경전이라 하면 원칙적으로 부처님이 직접 설파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문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외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그의 행적을 다루는 문헌으로서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나 다름없는 권위를 인정받는 문헌도 한문으로 번역된 경우일 경우에는 경이라 불러왔습니다.
위경(僞經)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 설한 것처럼 위조된 경전을 가리키는데, 실제로는 반드시 그러한 원칙에 의해 위경(僞經)과 진경(眞經)이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경전을 편찬하는 풍습이 성행함으로써 부처님이 설한 순수한 교리와 혼동되는 예가 적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대승경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대승경전을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따라서 위경이란 중국 등지에서 새로 제작된 경문만을 이르고, 인도나 티벳에서 전래된 것들은 모두 진경이라 간주되어 삼장 속에 편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티벳에서도 명백한 위경들이 상당히 제작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진경과 위경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면, 산스크리트 원본 등으로부터 번역된 경전을 진경 또는 정경이라 칭하고, 그로부터 번역된 경전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위경 또는 의경이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경(僞疑經)이라는 호칭도 사용되는데, 중국에서 편찬된 경전 목록, 즉 경록(經錄)에 의하여, 의경과 위경을 구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역된 경전이라 보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경전을 의경이라 하고, 위조된 것임이 확실한 경전을 위경이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경과 위경을 가리는 기준은 원전이 불교의 본산지인 인도에서 제작되었느냐의 여부와, 그 원전의 언어가 산스크리트인가 아닌가의 여부에 있습니다.
빨리어의 경우엔 그로부터 한역된 예가 매우 드물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국에는 상당한 양의 위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서는 여러 종의 경록들이 편찬되었습니다.
남북조 시대엔 46부 56권, 수나라 시대엔 209부 490권, 당나라 초기엔 406부 1074권의 위경들이 비약적으로 증가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특히 개원석교록이라는 유명한 경록이 대장경에 편입된 것으로 수록하고 있는 문헌의 수가 1076부 5048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위경들이 유행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불교의 완성기라고 하는 수(隨)와 당(唐)의 시대는 위경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위경들은 난해한 불교교리를 이해하는 데에 소질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불교를 근거로 삼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대장경에서는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끊임없이 이들 위경들이 진경과 마찬가지로 신봉되어 남몰래 서사(書寫)되고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행했던 위경들도 송나라시대 이후에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그 편린이나 이름만이 남아 있다가, 근래에 돈황에서 발견된 문헌들을 통해 적지 않은 위경들의 면모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국의 법을 밝힌 것으로 유명한 인왕반야경은 잘 알려진 위경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보살의 계위를 논하였던 범망경梵網經(초기경전 중의 범망경과는 다르다)은 남북조시대에 있어서 통치자의 비법과 승려의 비행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들과 연관있는 유명한 경전으로서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도 위경이라 간주됩니다.
위경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선입과도 크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위경인 줄 모르고 불교의 진면목인 양 신봉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위경이 큰 영향을 끼친 예로서는 중국의 삼계교三階敎가 있다.
말법시대의 중생구제를 위한 강력한 실천을 내세웠던 삼계교는상법결의경이라는 위경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경전은 6세기후반의 불교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을 반영한 것으로서 불교계의 타락과 헛된 신행을 지적하며 반성과 개혁을 강조하였습니다.
위경에 있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비불교적 요소의 삽입입니다.
이 경우 도교의 영향을 받은 위경이 많습니다.
점찰선악업보경이라는 위경에서 설명하는 점찰법이란 나무 바퀴를 가지고 과거 세상의 선악업과 현세의 고락길흉 등을 점치고, 흉사가 나타나면 지장보살을 예참하여 죄를 멸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본래 입장이 아닐 뿐더러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신행이 혹시 과거에 유행했던 위경에 의한 그릇된 것이 아닌지를 항상 점검해 보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