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諍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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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교대학 작성일11-05-13 12:29 조회3,464회 댓글0건본문
和諍思想
모든 대립적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는 불교사상.
이 사상은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특징적인 사상이다.
신라의 원광(圓光)이나 자장(慈藏)에서 비롯되었으며, 삼국통일시대 승려 원효(元曉)가 집대성했다.
원효가 화쟁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강조하게 된 것은 신라에 들어온 불교 이론들이 매우 다양하여 논쟁이 격심했기 때문이다.
각각의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이론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이론들을 배척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와 이론적인 상호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창안한 것이 화쟁의 방법이다.
화쟁의 대상은 그의 시대에 나타난 모든 불교 이론들이며, 논리적 근거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일심(一心)에 두었다.
또한 화쟁은 언어적으로 표현된 이론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원효에 따르면 진리를 전달하고자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와 진리가 고정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를 다만 진리의 전달 도구로 사용할 뿐이므로, 이러한 언어의 도구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진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왜곡시키기도 한다는 언어의 이중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하나의 이론에 집착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원효는 극단을 버리고 긍정과 부정을 자유자재로 하며, 경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구체적인 화쟁을 전개했다.
우선적인 화쟁의 방법은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고 부정을 통하여 집착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만으로 집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정 자체에 집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부정의 부정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하여 긍정과 부정의 극단을 떠나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긍정과 부정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초는 불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이다.
어느 한 가지의 경전에 집착하지 않고 두루 불경의 내용을 이해하여 폭넓은 시각을 가짐으로써 올바른 견해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화쟁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저술은 〈십문화쟁론 十門和諍論〉이다.
이 문헌은 원래 10가지 주제에 대한 화쟁을 담고 있었으나 현재는 공(空)과 유(有), 불성(佛性)의 유무를 다루고 있는 부분만 남아 있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후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국외적으로는 중국의 화엄종(華嚴宗)을 집대성한 법장(法藏)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제자인 징관(澄觀)도 원효를 높이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의천(義天)과 지눌(知訥)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모두 원효를 높이 평가하고 숭앙했으며, 당시 대립적인 위치에 있던 선(禪)과 교(敎)를 회통시키기 위해 의천은 교관병수(敎觀幷修)를, 지눌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함으로써 화쟁정신을 이어갔다.
이처럼 화쟁사상은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적인 사상으로 확립되었으며, 이 영향 아래 조선시대에는 함허(涵虛)와 휴정(休靜)의 삼교조화론(三敎調和論)으로 발전했다.
모든 대립적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는 불교사상.
이 사상은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특징적인 사상이다.
신라의 원광(圓光)이나 자장(慈藏)에서 비롯되었으며, 삼국통일시대 승려 원효(元曉)가 집대성했다.
원효가 화쟁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강조하게 된 것은 신라에 들어온 불교 이론들이 매우 다양하여 논쟁이 격심했기 때문이다.
각각의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이론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이론들을 배척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와 이론적인 상호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창안한 것이 화쟁의 방법이다.
화쟁의 대상은 그의 시대에 나타난 모든 불교 이론들이며, 논리적 근거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일심(一心)에 두었다.
또한 화쟁은 언어적으로 표현된 이론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원효에 따르면 진리를 전달하고자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와 진리가 고정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를 다만 진리의 전달 도구로 사용할 뿐이므로, 이러한 언어의 도구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진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왜곡시키기도 한다는 언어의 이중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하나의 이론에 집착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원효는 극단을 버리고 긍정과 부정을 자유자재로 하며, 경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구체적인 화쟁을 전개했다.
우선적인 화쟁의 방법은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고 부정을 통하여 집착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만으로 집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정 자체에 집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부정의 부정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하여 긍정과 부정의 극단을 떠나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긍정과 부정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초는 불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이다.
어느 한 가지의 경전에 집착하지 않고 두루 불경의 내용을 이해하여 폭넓은 시각을 가짐으로써 올바른 견해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화쟁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저술은 〈십문화쟁론 十門和諍論〉이다.
이 문헌은 원래 10가지 주제에 대한 화쟁을 담고 있었으나 현재는 공(空)과 유(有), 불성(佛性)의 유무를 다루고 있는 부분만 남아 있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후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국외적으로는 중국의 화엄종(華嚴宗)을 집대성한 법장(法藏)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제자인 징관(澄觀)도 원효를 높이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의천(義天)과 지눌(知訥)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모두 원효를 높이 평가하고 숭앙했으며, 당시 대립적인 위치에 있던 선(禪)과 교(敎)를 회통시키기 위해 의천은 교관병수(敎觀幷修)를, 지눌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함으로써 화쟁정신을 이어갔다.
이처럼 화쟁사상은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적인 사상으로 확립되었으며, 이 영향 아래 조선시대에는 함허(涵虛)와 휴정(休靜)의 삼교조화론(三敎調和論)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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