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동안거 결제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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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우스님 작성일11-12-28 10:34 조회4,118회 댓글0건본문
11월입니다. 날씨가 어느새 변하여 찬바람이 부는 계절로 바뀌었습니다. 따스했던 바람결도 매서워지고, 하늘은 맑게 개어 여름동안 가려져 있던 산과 계곡이 그 모습을 다 드러내는 계절이 도래하였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1월을 가리켜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말한다합니다. 다 사라진 듯하지만, 또 다시 소생할 여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동안거 결제날 입니다.
이번 안거의 주제를 저는 보리심으로 정하여 우리 장경사 신도님들께 안거공부 화두로 드리고자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때 아무런 분별심 없이 선뜻 나서서 돕는 일을 보리심이라고 우리는 이야기 합니다. 불교 수행의 첫걸음은 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입니다. 보리심 없이는 불도를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발보리심을 발심이라고도 하는데 '발'이란 본래 지니고 있는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불도를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기를 잊어버릴 때 모든 것은 비로소 자기가 된다." 라는 옛 선사의 구절이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보고 선뜻 나서서 돕는 일에는 자신이 존재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할 때 내 마음도 열립니다. 선행이란 바로 이런 것 입니다. 본래 부처인 우리 모두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보리심을 발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속에 묵혀 두고 있을 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인 불교는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참선과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에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그렇습니다. 다음 순간의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숨 한번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굳어져 버리는 것이 우리네 육신입니다. 불자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어제도 없고 늘 지금입니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안거 수행 시작하는 첫날, 수행의 첫 번째 과제는 자기가 하는 일을 살피는 것입니다. '보리심이 무엇인가?'의 참구가 바로 이번 안거의 의미이자 화두입니다. 참선과 염불, 간경, 절 등 다양한 기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주시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살피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삶은 물론 어려운 이웃의 삶도 함께 어우를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생겨날 것입니다. 보리심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화두를 통해 수행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한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그것은 바른 수행이고 공부입니다. 불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중생무변서원도 衆生無邊誓願度'입니다. "끝없는 중생을 기어이 다 건지고 어려운 이웃들을 다 보살피겠습니다."라는 서원입니다. 바로 이것이 발보리심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발보리심을 실천하여 이웃에게 회향할 수 있는 마음내는 뜻 깊은 겨울안거 되도록 우리 모두 정진합시다.
공부와 더불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장경사 주지소임을 보면서 여기 모인 여러분들과 함께 장경사를 더욱 훌륭한 집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한 생각이 집을 짓기도 하고 또 한 생각이 집을 허물기도 합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내는가가 우리 삶의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세상을 어둡게 하는 범죄도 한 생각을 어둡게 가졌기 때문이고, 세상을 밝히는 선행도 한순간 마음을 밝게 지녔기 때문에 좋은 빛을 발하는 것 입니다. 내 마음이고 내가 하는 생각이지만 살아가면서 그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마음은 바로 내 안에 늘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밖에서 찾고, 다른 대상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불상이고 전각이고 의식에 사용되는 종입니다. 이러한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그 본질이거나 부처는 아니지만 단지 외형이나 실상으로 보지 않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 부처의 실체를 우리 스스로가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결코 단순한 사물을 만들거나 짓는 거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적멸보궁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적멸보궁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부처님 계신 자리를 매우 신성시 표현하고자 실재 적멸보궁이란 불리는 곳에는 좌대 같은 것만 놓여있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실질적인 뜻은 지극히 고요해서 맑고 투명한 보배로운 궁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장경사에서는 이처럼 보배로운 궁전을 만들고자 1,000일 기도를 통해 지극히 고요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의 실체를 의식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중창불사를 서원하고자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인연으로 저와 함께 훌륭한 집을 만들어 가십시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천일동안 함께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오늘은 동안거 결제날 입니다.
이번 안거의 주제를 저는 보리심으로 정하여 우리 장경사 신도님들께 안거공부 화두로 드리고자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때 아무런 분별심 없이 선뜻 나서서 돕는 일을 보리심이라고 우리는 이야기 합니다. 불교 수행의 첫걸음은 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입니다. 보리심 없이는 불도를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발보리심을 발심이라고도 하는데 '발'이란 본래 지니고 있는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불도를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기를 잊어버릴 때 모든 것은 비로소 자기가 된다." 라는 옛 선사의 구절이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보고 선뜻 나서서 돕는 일에는 자신이 존재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할 때 내 마음도 열립니다. 선행이란 바로 이런 것 입니다. 본래 부처인 우리 모두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보리심을 발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속에 묵혀 두고 있을 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인 불교는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참선과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에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그렇습니다. 다음 순간의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숨 한번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굳어져 버리는 것이 우리네 육신입니다. 불자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어제도 없고 늘 지금입니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안거 수행 시작하는 첫날, 수행의 첫 번째 과제는 자기가 하는 일을 살피는 것입니다. '보리심이 무엇인가?'의 참구가 바로 이번 안거의 의미이자 화두입니다. 참선과 염불, 간경, 절 등 다양한 기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주시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살피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삶은 물론 어려운 이웃의 삶도 함께 어우를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생겨날 것입니다. 보리심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화두를 통해 수행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한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그것은 바른 수행이고 공부입니다. 불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중생무변서원도 衆生無邊誓願度'입니다. "끝없는 중생을 기어이 다 건지고 어려운 이웃들을 다 보살피겠습니다."라는 서원입니다. 바로 이것이 발보리심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발보리심을 실천하여 이웃에게 회향할 수 있는 마음내는 뜻 깊은 겨울안거 되도록 우리 모두 정진합시다.
공부와 더불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장경사 주지소임을 보면서 여기 모인 여러분들과 함께 장경사를 더욱 훌륭한 집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한 생각이 집을 짓기도 하고 또 한 생각이 집을 허물기도 합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내는가가 우리 삶의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세상을 어둡게 하는 범죄도 한 생각을 어둡게 가졌기 때문이고, 세상을 밝히는 선행도 한순간 마음을 밝게 지녔기 때문에 좋은 빛을 발하는 것 입니다. 내 마음이고 내가 하는 생각이지만 살아가면서 그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마음은 바로 내 안에 늘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밖에서 찾고, 다른 대상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불상이고 전각이고 의식에 사용되는 종입니다. 이러한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그 본질이거나 부처는 아니지만 단지 외형이나 실상으로 보지 않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 부처의 실체를 우리 스스로가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결코 단순한 사물을 만들거나 짓는 거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적멸보궁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적멸보궁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부처님 계신 자리를 매우 신성시 표현하고자 실재 적멸보궁이란 불리는 곳에는 좌대 같은 것만 놓여있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실질적인 뜻은 지극히 고요해서 맑고 투명한 보배로운 궁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장경사에서는 이처럼 보배로운 궁전을 만들고자 1,000일 기도를 통해 지극히 고요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의 실체를 의식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중창불사를 서원하고자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인연으로 저와 함께 훌륭한 집을 만들어 가십시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천일동안 함께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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