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하루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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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우스님 작성일11-05-14 08:42 조회3,143회 댓글0건본문
꽃피는 계절에 만나 이렇게 법회를 하게 되어 더 기쁜 오늘입니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꽃입니다. 남쪽의 매화소식이 날아와 여기 남한산성에 꽃피는 시간까지 매일 매일을 기다렸습니다. 꽃이 있으니까 봄처럼 느껴지지 꽃이 피지 않는다면 봄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장경사 불자님들에게 이 좋은 꽃철을 더욱 가까이 함께하고자 대웅전 앞에 화단을 꾸며 놓았는데 다들 향기 맡아 보셨는지요?
인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가면서 꽃을 피우면 축복받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힘들고 우울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순간들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합니다. 저 역시 날마다 새벽예불-사시-저녁예불이라는 기본 틀 속 안에서 순간 순간 주지로서 소임을 맡아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순간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순간이 없다면 수행이 지속 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 불자님들의 개인적인 삶 역시 순간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순간들이 쌓여서 한 생애를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을 헛되이 보내면 삶 자체가 소홀해집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살아가는데 가장 복잡하고 힘든 일이 있다면 미묘한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어떤 일을 처리 할 때도 일 자체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어렵습니다. 관계가 원만하면 안 될 일도 방법을 찾아나가 보지만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일 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치가 않습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그렇다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마음가짐이 삶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신도님이 어떻게 하면 장사가 날마다 잘 될 수 있는지를 묻기에, 신도님의 장사하시는 마음가짐이 어떤지를 여쭸습니다. 그랬더니 손님이 많은 날은 기분이 좋고, 그렇지 않은 날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음식준비를 하고 손님을 맞을 때 돈으로 보지 말고 저 분은 내 은인이다. 손님이 찾아오시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차도 살 수 있고, 우리 자식들 교육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손님이 내 은인이고 부처님이라 여기고 반기는 마음가짐으로 장사를 하라 하였습니다.
그러고 잊고 살다가 몇 개월 후에 만나게 되었는데, 잊고 지냈던 식당 장사가 어떤지를 듣지 되었습니다. 그 신도님 말씀이 은인이라 생각하고 했더니 귀하게 모시게 되고, 음식을 준비할 때도 더 정성스럽게 준비하게 되더랍니다. 그랬더니 손님이 많이 찾는 모범 식당이 되었다고 좋아 하였습니다.
음식 만드는 것은 손발이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달라지니까 그저 그랬던 보통 식당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유명 식당으로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도 마음의 주고받음입니다.
생각을 돌이켜 긍정적인 쪽으로 향하면 그 가치가 결국에는 본래의 나, 곧 자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원대하게만 느껴지는 자아실현입니다.
부처나 보살을 먼 데서 찾지 마십시오. 절에 부처와 보살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우리 불자님들 마음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생각을 마음가짐을 돌이켜 일깨워야 합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마음가짐이 개인은 물론 장경사 경내를 돌아 사회에도 새로운 활기를 채워줄 것입니다. 분명 살아가면서 힘들다 여겼던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관계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삶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탐구는 철학자만이 하는 물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 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화창하고 눈부신 봄날 꽃구경 가지 않고 무엇 하러 여기 이 자리에 왔을까요?
오늘 이렇게 장경사에 오신 것은 텅 빈 몸둥이가 온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내 몸을 움직이게 하고 운전하게 하여 여기까지 왔을까요? 그것은 부처님 만나러 부처되기 위한 그 한 생각이 일어나서 온 것입니다. 그 마음가짐으로 인해 몸은 그저 따라올 뿐입니다.
기도하고 참선하고 참회하는 일은 우리 불자님들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간절한 염원이며 수행이며 마음공부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거치면서 삶은 더욱 성숙되고 발전합니다. 정진하지 않고 날마다 그대로 있다면 삶은 무의미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입니다.
며칠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있어서 우리 불자들과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법회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저 같은 사람도 사찰에서 소임볼 일도 없고 또 우리 불자님들도 이렇게 장경사에 다닐 인연이 닿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굴도 모르던 남남이었지만 불법이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영향력이란 이런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에게 의지처가 있다는 것, 귀의처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생각할수록 부처님 법을 만나게 된 이러한 인연이 고마울 뿐입니다.
여기저기 꽃이 피어나는 것을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이 봄철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여 불자님들 마음 안에 각자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 보십시오. 행복하게 사는게 무엇인지 거듭거듭 물어야 합니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맞아 ‘전등록’에 실린 선시(禪詩)하나 선물하겠습니다.
< 밤마다 부처를 안고 >
무주선혜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고
아침마다 부처님과 함께 일어나네
일어서나 앉으나 서로 따라 다니고
말을 하나 말 없으나 같이 사네
몸과 그림자가 붙어 다니듯
털끝만큼 서로를 떠나지 않네
부처님 계신 곳을 알고 싶은가
울리는 저 종소리 그 곳이라네
夜夜抱佛眠 朝朝還共起
起坐鎭相隨 語默同居止
纖毫不相離 如身影相似
欲識佛去處 這語聲是
좋은 봄, 행복한 부처님 오신 날 맞이하십시다. 성불하십시오.
불기2555년 5월 3일
대한불교조계종장경사 주지 경 우 합장
<참고>
* '밤마다 부처를 안고'는 '전등록(傳燈錄)' 부대사 편에 실린 게송입니다.
* 무주선혜 婺州善慧(497-569): 보통 부대사라고 하는 양나라 말 진나라 초 때의 거사로, 성은 부씨고 이름은 흡이다. 스물네 살 때 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송산에 들어가 숨어서 수행하다가 쌍림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양나라 무제의 귀의를 받았고 종산 정림사에 머물렀다. 쌍림거사 또는 동양거사라고도 부른다.
인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가면서 꽃을 피우면 축복받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힘들고 우울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순간들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합니다. 저 역시 날마다 새벽예불-사시-저녁예불이라는 기본 틀 속 안에서 순간 순간 주지로서 소임을 맡아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순간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순간이 없다면 수행이 지속 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 불자님들의 개인적인 삶 역시 순간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순간들이 쌓여서 한 생애를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을 헛되이 보내면 삶 자체가 소홀해집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살아가는데 가장 복잡하고 힘든 일이 있다면 미묘한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어떤 일을 처리 할 때도 일 자체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어렵습니다. 관계가 원만하면 안 될 일도 방법을 찾아나가 보지만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일 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치가 않습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그렇다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마음가짐이 삶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신도님이 어떻게 하면 장사가 날마다 잘 될 수 있는지를 묻기에, 신도님의 장사하시는 마음가짐이 어떤지를 여쭸습니다. 그랬더니 손님이 많은 날은 기분이 좋고, 그렇지 않은 날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음식준비를 하고 손님을 맞을 때 돈으로 보지 말고 저 분은 내 은인이다. 손님이 찾아오시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차도 살 수 있고, 우리 자식들 교육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손님이 내 은인이고 부처님이라 여기고 반기는 마음가짐으로 장사를 하라 하였습니다.
그러고 잊고 살다가 몇 개월 후에 만나게 되었는데, 잊고 지냈던 식당 장사가 어떤지를 듣지 되었습니다. 그 신도님 말씀이 은인이라 생각하고 했더니 귀하게 모시게 되고, 음식을 준비할 때도 더 정성스럽게 준비하게 되더랍니다. 그랬더니 손님이 많이 찾는 모범 식당이 되었다고 좋아 하였습니다.
음식 만드는 것은 손발이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달라지니까 그저 그랬던 보통 식당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유명 식당으로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도 마음의 주고받음입니다.
생각을 돌이켜 긍정적인 쪽으로 향하면 그 가치가 결국에는 본래의 나, 곧 자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원대하게만 느껴지는 자아실현입니다.
부처나 보살을 먼 데서 찾지 마십시오. 절에 부처와 보살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우리 불자님들 마음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생각을 마음가짐을 돌이켜 일깨워야 합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마음가짐이 개인은 물론 장경사 경내를 돌아 사회에도 새로운 활기를 채워줄 것입니다. 분명 살아가면서 힘들다 여겼던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관계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삶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탐구는 철학자만이 하는 물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 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화창하고 눈부신 봄날 꽃구경 가지 않고 무엇 하러 여기 이 자리에 왔을까요?
오늘 이렇게 장경사에 오신 것은 텅 빈 몸둥이가 온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내 몸을 움직이게 하고 운전하게 하여 여기까지 왔을까요? 그것은 부처님 만나러 부처되기 위한 그 한 생각이 일어나서 온 것입니다. 그 마음가짐으로 인해 몸은 그저 따라올 뿐입니다.
기도하고 참선하고 참회하는 일은 우리 불자님들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간절한 염원이며 수행이며 마음공부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거치면서 삶은 더욱 성숙되고 발전합니다. 정진하지 않고 날마다 그대로 있다면 삶은 무의미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입니다.
며칠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있어서 우리 불자들과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법회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저 같은 사람도 사찰에서 소임볼 일도 없고 또 우리 불자님들도 이렇게 장경사에 다닐 인연이 닿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굴도 모르던 남남이었지만 불법이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영향력이란 이런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에게 의지처가 있다는 것, 귀의처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생각할수록 부처님 법을 만나게 된 이러한 인연이 고마울 뿐입니다.
여기저기 꽃이 피어나는 것을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이 봄철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여 불자님들 마음 안에 각자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 보십시오. 행복하게 사는게 무엇인지 거듭거듭 물어야 합니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맞아 ‘전등록’에 실린 선시(禪詩)하나 선물하겠습니다.
< 밤마다 부처를 안고 >
무주선혜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고
아침마다 부처님과 함께 일어나네
일어서나 앉으나 서로 따라 다니고
말을 하나 말 없으나 같이 사네
몸과 그림자가 붙어 다니듯
털끝만큼 서로를 떠나지 않네
부처님 계신 곳을 알고 싶은가
울리는 저 종소리 그 곳이라네
夜夜抱佛眠 朝朝還共起
起坐鎭相隨 語默同居止
纖毫不相離 如身影相似
欲識佛去處 這語聲是
좋은 봄, 행복한 부처님 오신 날 맞이하십시다. 성불하십시오.
불기2555년 5월 3일
대한불교조계종장경사 주지 경 우 합장
<참고>
* '밤마다 부처를 안고'는 '전등록(傳燈錄)' 부대사 편에 실린 게송입니다.
* 무주선혜 婺州善慧(497-569): 보통 부대사라고 하는 양나라 말 진나라 초 때의 거사로, 성은 부씨고 이름은 흡이다. 스물네 살 때 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송산에 들어가 숨어서 수행하다가 쌍림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양나라 무제의 귀의를 받았고 종산 정림사에 머물렀다. 쌍림거사 또는 동양거사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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