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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6(2012)년 7월 일요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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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우스님 작성일12-07-04 11:36 조회4,3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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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식을 기다리며 양지바른 볕을 그리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볕을 피해 그늘을 찾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간절히 기다리지도 않았건만 여름이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과연 우리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와서 다행입니다.
 반가워하고 기다리던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신도님들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이죠? 많은 사람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전국의 사찰은 산문을 걸어 잠그고 하안거 결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안거는 더위를 피해 한 도량을 정하고 그 곳에서 3개월 동안 수행과 정진을 하는 불교 고유의 전통입니다. 음력 4월 15일 입제에 들고 7월 15일 해제합니다.

 결제는 불교의 수행정신을 잇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 기간 불자님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 1시간이라도 아니 10분 만이라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 장경사가 처음으로 일요 가족법회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니까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큰 변화라 할 수는 없습니다.

 기존의 법회 기도들도 그대로 열리는 가운데 일요일 한번 더 법회가 열린 것 뿐입니다.
 지난번 법회때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의 생활패턴에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동안 가족이 함께 절에 오고 싶어도 초하루 법회에는 참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직장생활, 학업등의 이유로 주말이 아니면 사찰을 찾을 시간이 없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매월 일요법회를 통해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이나 학생분들도 법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부디 법회에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처처(處處)가 불상(佛像)이고 사사(事事)가 불공(佛供)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것은 수행이 잘 된 도인들의 말씀입니다.
 우리같이 근기가 낮고 수행의 깊이가 얕은 사람들은 법회에 참석해 부처님 법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일요일이라해서 놀러가고 쉴 생각만 하지 마시고 좋은 장경사 도량에 오셔서 복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 신도님들은 지금까지 복은 짓지 않고 받기만 바라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복을 짓는 것은 쉽습니다. 복을 지어야 한다니까 큰 불사를 해야한다거나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내가 아닌 남을 향한 조그만 배려 양보로도 큰 복을 지을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복을 지을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제부터는 기복이 아닌 작복의 인연을 지어야 진정한 불자인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동냥을 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에게 보시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두말없이 빌어먹는 사람보다 베푸는 사람이 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을 베푸는 데서 큰 만족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받으려는 마음에서 번뇌가 쌓이고, 탐욕이 생기고 악업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복을 지으려는 마음이 번뇌에서 자유로워지고 기쁨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복을 짓는 법을 깨우쳐 주시는 분입니다.

 인도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간디의 유명한 일화로 예를 들겠습니다.
 하루는 기차를 타러 역에 갔는데 막 열차가 떠나고 있어서 겨우 마지막 칸에 매달려 탔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신발 한 짝이 벗겨져서 철로위로 떨어져 버렸답니다. 간디는 생각합니다. 뛰어내려 신발 한 짝을 찾을까? 그냥 잊어버릴까? 아주 짧은 찰나에 많은 생각들이 들었을 겁니다. 그 순간 간디의 선택은 나머지 신발 한 짝도 벗어서 먼저 떨어진 쪽으로 던졌습니다. 간디의 생각은 누군가 신발 한 짝을 주우면 쓸모가 없으니 아예 나머지까지 던져 준겁니다. 이 얘기를 통해 우리의 삶에서도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알아차리셨죠?

 신발을 던짐으로서 간디는 베푸는 행복감을 느낀 것입니다.
 욕망과 번뇌를 던져버림으로서 이를 기쁨으로 화(化)한것입니다. 우리 불교는 복을 비는 기원하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복을 짓는 작복신앙입니다. 나보다 못한 다른 이를 위해서 자신을 낮추고(下心) 복짓는 행을 해야합니다. 행은 습이 되고 습은 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의 핵심인 이타행입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바른 신념과 바른 행으로 인생을 더욱 값지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또,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확고한 신심을 가질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스스로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신심은 돈독한가?’
 ‘나는 흔들리지 않는 신심을 가졌는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믿는가?’

 답은 여러분, 신도님들이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만이 알고 있습니다.
 신발 한 짝은 간디 자신이나 주운 사람이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 보다는 남을 위한 마음, 베품, 배려가 복을 짓는 것입니다.

 만약 스스로 신신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면, 믿음의 주춧돌을 다시 놓으셔야 합니다. 불교는 ‘마음이 곧 부처’ 라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스스로 실천하고 스스로 깨닫는 종교입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바른 믿음은 아닙니다. 그것은 맹신이고 광신입니다.
 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여 ‘이것이 바른 길’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른 믿음이 생겨나고 확고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어떠한 유혹과 갈등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심이 자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일러주신 믿음이요 신심입니다.

 확고한 신심은 주춧돌과 같습니다. 집을 잘 지으려면 주춧돌을 잘 놓아야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신심이 확고하지 못하면, 주춧돌이 잘 놓여져 있지 않으면 집은 기울고 어긋나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집을 아무리 번듯하게 짓는다고 하더라도 주춧돌을 잘 놓지 않는다면 그 집은 오래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확고한 신심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법당안에 계신 우리 장경사 신도님들은 신심이 확고하십니까?
 확고한 신심을 가졌다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의심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의심이 없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마음, 그런 신심을 내셔야 합니다. 알았죠?

 다음은 설선당 건축관련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곧 설선당 불사가 시작됩니다. 엊그제 목요일에 국토해양부에서 실사를 해서 불사를 위한 절차가 마무리 되어 갑니다. 계획했던 것보다 좀 줄여서 50평 정도로 지을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장경사는 전통사찰보존법에 의한 전통사찰이고 개발제한구역이다 보니 심의 절차가 많고 어려웠습니다. 또 남한산성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건축불사 조건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초파일 쇠면 바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많이 늦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불자님들이 이번 건축불사에 동참 의사를 보여주셨고, 직접 동참 약속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우리 장경사 도량을 더 좋은 도량으로 가꾸기 위한 것이니 더 많은 불자님들이 동참해 주시고 잘 마무리 될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신도님들에게 불사에 동참하라는 말을 잘 못합니다. 어렵게 말을 꺼낸 것이니 수희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더 많은 분들이 동참한다면 불사의 의미도 한층 빛나리라 믿습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형편 되는대로 마음을 내어 주시면 됩니다.

 오늘은 첫 일요법회고 하니 여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요법회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신도님들이 참여해주셔야 합니다. 주변의 불자님들에게도 일요법회를 알려주시고요...
 혼자 와서 혼자만 복 짓지 마시고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복을 지을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성격이 내성적이라 신도님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차 한잔 달라고 하십시오. 그래야 저도 신도님들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얼굴도 익히지요. 그러니 언제든지 종무소에 전화해서 제가 있는지 확인하시고 차 마시러 오겠다고 일러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시간에 맞취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금강경 사구게를 읽는 것으로 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 하느니라.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는 보리라.

 성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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